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93
Guk Cho
본고는 1890년대~1900년대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국제법 저서 분석을 통해 근대 일본의 국제법 수용과정 속에서 영사재판, 치외법권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살펴보았다. 1894년 영일통상항해조약을 통해 치외법권의 철폐를 이루기 전까지, 일본은 동아시아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과 불평등 조약하에 놓여 있었다. 영사재판권, 치외법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1890년에 출판된 국제법 서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조약개정의 성공, 청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스스로가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의 불평등조약을 중국에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법 논의에서도 영사재판권 행사의 ‘문명 등급’ 논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었던 ‘제국’이 현실화되면서 문명등급에 따른 국제법 적용의 논리를 스스로 정당화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대상황에 따라 영사재판권과 치외법권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문명 등급의 논리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로서 치외법권의 불가피성과 폐해가 언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우열이 아닌 법률의 차이만으로 치외법권 시행을 옹호하면서 그 폐해를 비판하는 모순적 논리는 당시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중적 자세를 보여주고도 있다.
{"title":"Acceptance of International Law and Recognition of Extraterritoriality in modern Japan","authors":"Guk Cho","doi":"10.31930/jas.2023.09.66.3.93","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93","url":null,"abstract":"본고는 1890년대~1900년대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국제법 저서 분석을 통해 근대 일본의 국제법 수용과정 속에서 영사재판, 치외법권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살펴보았다. 1894년 영일통상항해조약을 통해 치외법권의 철폐를 이루기 전까지, 일본은 동아시아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과 불평등 조약하에 놓여 있었다. 영사재판권, 치외법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1890년에 출판된 국제법 서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조약개정의 성공, 청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스스로가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의 불평등조약을 중국에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법 논의에서도 영사재판권 행사의 ‘문명 등급’ 논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었던 ‘제국’이 현실화되면서 문명등급에 따른 국제법 적용의 논리를 스스로 정당화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대상황에 따라 영사재판권과 치외법권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문명 등급의 논리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로서 치외법권의 불가피성과 폐해가 언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우열이 아닌 법률의 차이만으로 치외법권 시행을 옹호하면서 그 폐해를 비판하는 모순적 논리는 당시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중적 자세를 보여주고도 있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33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395","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7
Deoksoo Choi
조선이 1876년 개항 이래 일본 및 서구 열강과 체결한 조약에 대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을 위해서는 조약에 나타난 용어에 대한 기초적인 사전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본 논문은 ‘한국 근대국제법 전문용어 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의 출발점과 진행 과정을 개관한 것이다. Ⅱ장에서는 연구의 출발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작업으로 국내외 주요 성과물에 대한 검토하였다. Ⅲ장에서는 ‘한국근대국제법 전문용어사전’에 실릴 표제어 추출과정과 사전편찬을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제시하였다.
{"title":"Current Status and Research Tasks on the Terminology Dictionary of Modern International Law in Korea","authors":"Deoksoo Choi","doi":"10.31930/jas.2023.09.66.3.7","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7","url":null,"abstract":"조선이 1876년 개항 이래 일본 및 서구 열강과 체결한 조약에 대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을 위해서는 조약에 나타난 용어에 대한 기초적인 사전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본 논문은 ‘한국 근대국제법 전문용어 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의 출발점과 진행 과정을 개관한 것이다. Ⅱ장에서는 연구의 출발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작업으로 국내외 주요 성과물에 대한 검토하였다. Ⅲ장에서는 ‘한국근대국제법 전문용어사전’에 실릴 표제어 추출과정과 사전편찬을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제시하였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4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405","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33
Bada Yoo
오늘날 국가는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국제법적 주체다. 국가 및 주권, 그리고 이둘이 결합된 주권국가는 국제법상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휘튼의 『만국공법』과 오펜하임의 『국제법』을 통하여 이 개념들을 살펴보았다.BR 국제법의 고유한 주체는 국가이다. 그리고 국가는 결합된 힘에 의하여 상호 안전과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정치적 공동체로 정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권은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권력이다. 마지막으로 주권국가는 외세로부터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하는 존재다. 다만 주권을 제약받는 국가들은 국제법에서 반주권국가로 불린다.BR 바로 그러한 점을 통해 볼 때 근대 한국의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는 매우 유동적이었다. 조선의 대외적 주권은 일부 제약을 받았다. 그럼에도 조선은 주요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대외적 주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보호국이 된 다음 1910년에는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다.
{"title":"States, Sovereignty, and Semi Sovereign States shown in International Law Books of Wheaton and Oppenheim","authors":"Bada Yoo","doi":"10.31930/jas.2023.09.66.3.33","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33","url":null,"abstract":"오늘날 국가는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국제법적 주체다. 국가 및 주권, 그리고 이둘이 결합된 주권국가는 국제법상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휘튼의 『만국공법』과 오펜하임의 『국제법』을 통하여 이 개념들을 살펴보았다.BR 국제법의 고유한 주체는 국가이다. 그리고 국가는 결합된 힘에 의하여 상호 안전과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정치적 공동체로 정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권은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권력이다. 마지막으로 주권국가는 외세로부터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하는 존재다. 다만 주권을 제약받는 국가들은 국제법에서 반주권국가로 불린다.BR 바로 그러한 점을 통해 볼 때 근대 한국의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는 매우 유동적이었다. 조선의 대외적 주권은 일부 제약을 받았다. 그럼에도 조선은 주요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대외적 주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보호국이 된 다음 1910년에는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21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715","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61
Sungmin Han
근대 조약체제는 19세기 이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도로 성립되었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조약체결을 강요당한 국가들은 조약이란 제도와 관련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의 위압에 불평등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면서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였으나, 동양의 전통적인 국제질서체제가 혼용되어 불완전한 편입이었다. 조선은 당시의 조약형식에 충실한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통해 근대 조약체제에 확실히 편입하였다.BR 조선이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고, 『朝鮮策略』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만국공법과 조약 관련 용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萬國公法』인데, 청국의 문화와 언어생활에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를 차용하여 번역되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동양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국제법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으나, 점차 본뜻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의 문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188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 사회에서도 만국공법 및 힘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관계, 조약의 현실에 대한 회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BR 이는 국제 관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조선사회의 인식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조약이 결코 조항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 경험, 만국공법 외에 다른 국제법 서적들도 소개되어 비교가 가능해졌다는 점, 조약 및 국제법 관련 용어에 대한 새로운 번역의 시도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title":"The Incorporation of Chosun into the Treaty System and the Recognition and Development of Treaty-Related Technical Terms","authors":"Sungmin Han","doi":"10.31930/jas.2023.09.66.3.61","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61","url":null,"abstract":"근대 조약체제는 19세기 이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도로 성립되었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조약체결을 강요당한 국가들은 조약이란 제도와 관련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의 위압에 불평등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면서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였으나, 동양의 전통적인 국제질서체제가 혼용되어 불완전한 편입이었다. 조선은 당시의 조약형식에 충실한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통해 근대 조약체제에 확실히 편입하였다.BR 조선이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고, 『朝鮮策略』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만국공법과 조약 관련 용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萬國公法』인데, 청국의 문화와 언어생활에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를 차용하여 번역되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동양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국제법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으나, 점차 본뜻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의 문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188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 사회에서도 만국공법 및 힘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관계, 조약의 현실에 대한 회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BR 이는 국제 관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조선사회의 인식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조약이 결코 조항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 경험, 만국공법 외에 다른 국제법 서적들도 소개되어 비교가 가능해졌다는 점, 조약 및 국제법 관련 용어에 대한 새로운 번역의 시도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101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724","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181
Seunghugh Shin
이 글은 화웨이 문제와 데이터 안보에 대한 일본의 대응에서 발견되는 차이에 주목하여 사이버 안보 이슈별 대응을 결정한 요인을 추적하는 시도를 벌인다. 역할이론과 존재론적 안보의 논의를 복합적으로 원용해 개념화한 국제적 역할인식을 통해 일본의 이슈별 대응 간 차이를 설명한 이 글은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쟁점화된 이슈를 중심으로 나타난 미국의 대일 역할기대와 아베 정권 집권기 일본의 국제적 역할인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화웨이 문제와 데이터 안보에 대한 상이한 대응 방식이 외교 기조를 통해 표현된 국제적 역할인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주장한다.
{"title":"Japan’s Response to Cyber Security Issues and Its Correlation with the Abe Administration’s International Role Conception : From the Perspective of Role Theory and Ontological Security","authors":"Seunghugh Shin","doi":"10.31930/jas.2023.09.66.3.181","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181","url":null,"abstract":"이 글은 화웨이 문제와 데이터 안보에 대한 일본의 대응에서 발견되는 차이에 주목하여 사이버 안보 이슈별 대응을 결정한 요인을 추적하는 시도를 벌인다. 역할이론과 존재론적 안보의 논의를 복합적으로 원용해 개념화한 국제적 역할인식을 통해 일본의 이슈별 대응 간 차이를 설명한 이 글은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쟁점화된 이슈를 중심으로 나타난 미국의 대일 역할기대와 아베 정권 집권기 일본의 국제적 역할인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화웨이 문제와 데이터 안보에 대한 상이한 대응 방식이 외교 기조를 통해 표현된 국제적 역할인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주장한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39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392","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123
Kiljoo Ban
{"title":"Reciprocity and Security Dilemma: Analytic Insight and Case Studies on the Korean Peninsula","authors":"Kiljoo Ban","doi":"10.31930/jas.2023.09.66.3.123","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123","url":null,"abstract":"","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21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393","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269
Sunmi Jung
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 이후 카자흐스탄은 소련 독립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금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소요 사태 이후 국정연설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고 헌법개정과 법률제정 등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BR 본 연구는 카자흐스탄의 민주주의에 관한 연구로, 토카예프 정부의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헌팅턴의 민주주의 이행양식과 발렌주엘라의 민주주의 공고화 개념을 차용하여 분석한다. 본 연구는 카자흐스탄의 민주주의에 관한 초기 연구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최소주의적 관점을 분석틀로 사용함으로써 세계 민주주의 연구의 카자흐스탄 사례로서 그 의미를 지닌다.
{"title":"Evaluation and prospects of democracy in Kazakhstan : Focusing on theories of democratic transition and consolidation","authors":"Sunmi Jung","doi":"10.31930/jas.2023.09.66.3.269","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269","url":null,"abstract":"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 이후 카자흐스탄은 소련 독립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금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소요 사태 이후 국정연설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고 헌법개정과 법률제정 등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BR 본 연구는 카자흐스탄의 민주주의에 관한 연구로, 토카예프 정부의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헌팅턴의 민주주의 이행양식과 발렌주엘라의 민주주의 공고화 개념을 차용하여 분석한다. 본 연구는 카자흐스탄의 민주주의에 관한 초기 연구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최소주의적 관점을 분석틀로 사용함으로써 세계 민주주의 연구의 카자흐스탄 사례로서 그 의미를 지닌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47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40056","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215
Myungchul Cho
일본 육군을 대표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이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를 개설하는 1890년에 현역 대장이면서 정부의 수반으로서 대외전략의 기본 방향을 ‘주권선’과 ‘이익선’의 개념으로 제시했다. 야마가타의 ‘이익선’ 논리는 군사적 의미가 강하고 영토적 확대를 자극하는 전략 개념이었다.BR 일본의 ‘이익선’에 포함된 최초의 지역은 조선이었지만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만이 일본 영토에 편입되자 일본의 ‘이익선’은 대만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새로운 이익선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이 이른바 ‘남진론(南進論)’이었다. ‘남진론’은 의화단 사건으로 동북아의 국제질서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일본군이 복건성의 아모이항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으로 확산되었고 외무성에서는 조선의 일부를 군사점령하자는 안에서부터 만주와 한국을 교환하자는 안까지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하지만 의화단 시기 일본이 스스로 설정한 ‘이익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러시아와의 대립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title":"Japan\"s foreign strategy and ‘benefit ine’ logic during the Meiji period","authors":"Myungchul Cho","doi":"10.31930/jas.2023.09.66.3.215","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215","url":null,"abstract":"일본 육군을 대표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이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를 개설하는 1890년에 현역 대장이면서 정부의 수반으로서 대외전략의 기본 방향을 ‘주권선’과 ‘이익선’의 개념으로 제시했다. 야마가타의 ‘이익선’ 논리는 군사적 의미가 강하고 영토적 확대를 자극하는 전략 개념이었다.BR 일본의 ‘이익선’에 포함된 최초의 지역은 조선이었지만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만이 일본 영토에 편입되자 일본의 ‘이익선’은 대만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새로운 이익선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이 이른바 ‘남진론(南進論)’이었다. ‘남진론’은 의화단 사건으로 동북아의 국제질서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일본군이 복건성의 아모이항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으로 확산되었고 외무성에서는 조선의 일부를 군사점령하자는 안에서부터 만주와 한국을 교환하자는 안까지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하지만 의화단 시기 일본이 스스로 설정한 ‘이익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러시아와의 대립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36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171","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239
Yoonjae Jeon
본 연구는 2차 세계대전 후 호주-영국 간 군사협력이 약화된 동인을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연루 위험의 심화에서 찾는다. 전후 양국 간 군사협력은 공산 진영의 위협으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보호해야 할 공통의 이해관계로 인해 확고히 유지되었으며, 특히 양국 모두에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말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는 미국이 제공해주지 못했던 실질적 안전보장을 호주 측에 담보했으며, 말레이 소요사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호주-영국 간 군사협력은 방기-연루 위험이 미약한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의한 새로운 위협의 출현과 호주-인도네시아 간 분쟁 가능성 등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영국과의 군사협력은 불필요한 연루 위험의 원인이 되어 호주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 지원에 따른 부담마저 가중됨에 따라, 결국 호주는 영국과의 군사협력을 축소하고 미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노선을 선택하였다.
{"title":"Decline of Australian-British Military Cooperation in the Early Cold War and Alliance Security Dilemma : Focusing on cases of military intervention related to Malaysia in the 1950s and 1960s","authors":"Yoonjae Jeon","doi":"10.31930/jas.2023.09.66.3.239","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239","url":null,"abstract":"본 연구는 2차 세계대전 후 호주-영국 간 군사협력이 약화된 동인을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연루 위험의 심화에서 찾는다. 전후 양국 간 군사협력은 공산 진영의 위협으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보호해야 할 공통의 이해관계로 인해 확고히 유지되었으며, 특히 양국 모두에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말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는 미국이 제공해주지 못했던 실질적 안전보장을 호주 측에 담보했으며, 말레이 소요사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호주-영국 간 군사협력은 방기-연루 위험이 미약한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의한 새로운 위협의 출현과 호주-인도네시아 간 분쟁 가능성 등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영국과의 군사협력은 불필요한 연루 위험의 원인이 되어 호주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 지원에 따른 부담마저 가중됨에 따라, 결국 호주는 영국과의 군사협력을 축소하고 미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노선을 선택하였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6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394","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31930/jas.2023.09.66.3.151
Changboo Kang
이 논문은 6·25전쟁기 한국 공군 내에서 발생했던 항공기 사고들을 다룬 최초의 연구로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후에 한국 공군이 조종사 적성검사를 도입해가는 과정에서 한·미 공군이 기울였던 공동의 노력을 조명한다. 창설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전쟁을 맞은 한국 공군으로서는 전쟁 내내 항공기와 조종사가 절박했다. 그러나 비행훈련체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하는 항공기 사고는, 공군의 전투 작전과 훈련 모두를 심각하게 제약했다. 휴전 무렵에서야 미국 공군은, 한국 공군 내에는 조종사 후보생의 항공적성을 평가하여 부적합자를 사전에 걸러내는 체계가 없다는 점을 반복되는 항공기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미국 공군에서 적용하던 조종사 적성검사체계를 한국 공군에 맞게 개조하여 적용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러나 미국 측의 인식과는 달리, 적성검사의 도입을 포함하는 항공의학의 발전을 통해 양질의 조종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한국 공군 내에서 이미 자생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공군이 사전 적성검사를 통해 항공기 사고에 대한 해법을 찾아갔던 과정은, 미국 공군의 일방적 지도의 결과가 아니라 한국 공군의 내부적 노력과 미국 공군의 강력한 외부적 지원이 서로 만나 함께 답을 찾아간 결과였다.
{"title":"The Roles of USAF and ROKAF in the introduction of psychological preselection testing for pilot candidates in the ROKAF after the Korean War","authors":"Changboo Kang","doi":"10.31930/jas.2023.09.66.3.151","DOIUrl":"https://doi.org/10.31930/jas.2023.09.66.3.151","url":null,"abstract":"이 논문은 6·25전쟁기 한국 공군 내에서 발생했던 항공기 사고들을 다룬 최초의 연구로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후에 한국 공군이 조종사 적성검사를 도입해가는 과정에서 한·미 공군이 기울였던 공동의 노력을 조명한다. 창설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전쟁을 맞은 한국 공군으로서는 전쟁 내내 항공기와 조종사가 절박했다. 그러나 비행훈련체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하는 항공기 사고는, 공군의 전투 작전과 훈련 모두를 심각하게 제약했다. 휴전 무렵에서야 미국 공군은, 한국 공군 내에는 조종사 후보생의 항공적성을 평가하여 부적합자를 사전에 걸러내는 체계가 없다는 점을 반복되는 항공기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미국 공군에서 적용하던 조종사 적성검사체계를 한국 공군에 맞게 개조하여 적용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러나 미국 측의 인식과는 달리, 적성검사의 도입을 포함하는 항공의학의 발전을 통해 양질의 조종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한국 공군 내에서 이미 자생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공군이 사전 적성검사를 통해 항공기 사고에 대한 해법을 찾아갔던 과정은, 미국 공군의 일방적 지도의 결과가 아니라 한국 공군의 내부적 노력과 미국 공군의 강력한 외부적 지원이 서로 만나 함께 답을 찾아간 결과였다.","PeriodicalId":479224,"journal":{"name":"Ase'a yeon'gu","volume":"9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39396","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